사적명

통정공(휘 회백) 산소

사적명

광풍정과 사애각

소재지

연천군 왕징면 능마을

소재지

경북 경주시

기타

시향-음 10월 2일

기타

 

아버지

 蓍(시) 고려 문하좌찬성

 동생-淮仲(회중), 淮順(회순), 淮叔(회숙), 淮季(회계)

 淮伯(회백)<박 7세>         고려 말 명신 정당문학, 대사헌 역임

   1357∼1402 자는 백보(伯父), 호는 처음에는 균정(均貞)이라 하였다가 후에 통정(通亭)으로 고쳤다. 일찍이 양촌 권근(權近)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였으며, 1376년(우왕 2) 정총(鄭摠) 방 문과에 급제, 성균관 좨주(祭酒), 밀직제학, 1377년 밀직부사(密直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후 첨서사사(簽書司事)에 1379년 다시 명나라에 다녀 왔다. 1388년(창왕 즉위년) 11월에는 밀직사(密直使)로 부사(副使) 이방우(李芳雨 이성계의 맏아들)와 함께 다시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이때 정몽주, 이숭인, 하륜과 더불어 호복(胡服)을 화제(華制)로 바꿀 것을 건의했다. 1389년 공양왕이 즉위하자 추충협보공신(推忠協輔功臣) 호를  받았고  세자사(世子師)에 임명되었으나, 나이가 어리고 학문이 부족하다고 사양했다. 다시 승진되어 판밀지사사 겸 이조판서에 오르고, 한양 천도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관철시켰다. 얼마 후 교주 강릉도 관찰출척사, 1391년(공양왕 3) 12월에는 정당문학(政堂文學) 겸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다. 정몽주가  주살당하고 이성계의 일파인 조준(趙浚), 정도전(鄭道傳) 등과 반목하다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진양에 귀양갔다.

  조선이 건국되자 모친 상중과 병을 핑계로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으나 태조의 강권과 멸문(滅門)을 막기 위해  계림부윤에  나아가고 다시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 都巡問使) 겸 병마수군절도사 영흥부윤을 지냈다. 1402년(태종 2) 참판승추부사(參判承樞府事), 경상도 도관찰출척사를 제수받았으나 모친 상중이라 하여 나아가지 않았다. 손자 희맹(希孟)의 공적으로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춘추관 성균관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세자이사(世子貳師)에 증직되었다. 성리학에 밝아 당시 학자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태종실록 통정공 졸기(卒記)에는 인품이 총명하고 강개노성(慷慨老成)하여 이르는 곳마다 이름을 떨쳤다. 이숭인(李崇仁)과도 가까웠는데 이숭인은 "균정(均貞) 강백보(姜伯父)는 나의 벗으로 경전을 강론할 때는 정밀하고 자상하여 언제나 나를 비롯하여 동료들 모두가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라고 평하고 있다. 저서로는 통정집(通亭集)이 있다. 

   정도전과 반목하다가 귀양가 후에 동북면도순문사 역임 

  경남 산청군 단곡사에 어릴 때 형제들과 손수 심은 매화나무가 있는데, 공의 벼슬이 정당문학에 이르렀으므로 사람들이 이 나무를 정당매(政堂梅)라고 부르고 정당매각(政堂梅閣)의 글은 진주 하룡(河龍)이 짓고 하원규(河元逵)가 썼다. 경주부윤 이돈상(李敦相)이 지은 공의 기적비(紀績碑)가 있다. 기아(箕雅)  동문선(東文選), 여지승람, 여사 명신열전(麗史 名臣列傳)에 사적이 실려 있다.

배위

군부인 동래 鄭氏(정씨), 1390년 별세하였다. 아버지는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 양도공(良度公) 우곡(愚谷) 양생(良生), 조부는 밀직 봉산군(蓬山君) 호(瑚), 증조부는  판도진사사 유의(惟義), 외조부는 찬성 문정공 순흥 안축(安軸)이다.

  묘는 임강현 도원역 뒤에 있었으나 실전하여 공의 묘 오른편에 단을 세웠다. 3남 2녀를 길렀다.

증 정경부인 성주 李氏(이씨), 1445년에 별세했다. 아버지는 중대광 평양부윤 성산부원군 존성(存性), 조부는 낭장 향(嚮), 증조부는 대제학 흥안부원군 문충공 인복(仁復), 외조부는 시중 월성부원군 충렬공 경주 이성림(李成霖)이다.   묘는 공의 뒤편 유좌(酉坐)에 있다.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능촌산 유좌(酉坐)에 있다. 손자 진산군 희맹(希孟)이 행장을 지었다. 신도비명은 안동 김윤동(金潤東)이 짓고 김순동(金舜東)이 병전서를 썼다. 

아들

宗德(종덕), 友德(우덕), 進德(진덕), 碩德(석덕), 順德(순덕)  

사위

金張(김장)  상주인, 문과 정언. 아버지는 부사 준(俊), 아들은 직장 극용(克用), 지평 이용(利用), 문과 좌랑 정용(貞用),

南景佑(남경우) 의령인, 밀직사사. 아버지는 공은공 강무(剛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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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명

단속사지 유허탑

사적명

정당매와 정당매각

소재지

산청군 단성면 운리

소재지

산청군 단성면 운리 

교통편

 

교통편

기타

통정공(휘 회백), 통계공(휘 회중) 형제들이 어릴 때 공부했던 절터에 남아 있는 탑

기타

통정공 형제들이 단속사에서 수학하면서 아버지를 기리며 심은 매화 

통정공 찬사(11세손 교관 석하(錫夏)가 지음)

華嵩德望奎璧文章

화산과 숭산같은 높으신 덕망이 규성과 벽성같은 빛나는 문장이라

烏堂擊奸秉金矢而勵節 사헌부서 간신칠 때 금살같은 절개지켜

鳳閣論道調玉鉉而贊元 정당문학 도를강논 구슬같은 원리밝혀

趙靈王胡服之風陋矣其舊 조영왕의 호복바람 옛모습만 더럽히니

孔夫子周冕之制煥然維新 공자님의 주에예북 환연히 유신했네 

禮敎河鄭李一時同修 예법과 교화하는 하, 정, 이와 같이 배워

相業祖子孫三世迭繼 정승자리 이어감이 조자손이 삼세였네

滄桑忽變以明哲而保身 세상이 바뀌어도 밝은 지혜 보신하고

金火遽遷當廢興而知命 역사가 달라질 때 망할 줄 미리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