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蓍(시) ○ 문하찬성사

 형-淮伯(회백)○, 淮仲(회중)○,  淮順(회순) 淮叔(회숙)

 淮季(회계)<박 7세>   공양왕 부마

 1364∼1458 자는 계보(季父), 1389년(창왕) 김여지(金汝知) 방 별장(別將) 재임시에 등제하여 1390년(공양왕 2) 고공좌랑(考功佐郞)으로 세자 석(奭)의 시학(侍學)이 되었고, 같은 해에 공양왕의 사위가 되어 진원군(晉原君)에 봉해졌다. 고려가 망하여 공양왕이 폐위되자  동서 우성범(禹成範)과  함께  참형을 당했다. 일설에는 대비의 간청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져 가솔을 이끌고 개성에서 500여 리 떨어진 평안북도 안변군 배화면 수악리에 피신하여 이름을 회조(淮祖)로 고치고 아들 염(濂)의 효성으로 95세까지 살았다.

  고려사에는 공양왕 4년 공양왕을 폐하고 원주로 내보낼 때 단양군 우성범, 진원군 강회계를 회빈문 밖에서 참했다는 소리를 이태조가 대비전에서 듣고  대노하며 그것을 멈출 것을 명했으나 미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배위

공양왕(恭讓王) 여 경화궁주(敬和宮主)이며, 외할아버지는 창성군(昌城君) 교하(交河) 노정(盧禎)이다.

  

나주군 안평면 심치리에 봉단을 세웠다.

아들

濂(廉) 胥祐(서우) 源(원)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