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淮伯(회백)

 동생- 友德(우덕), 進德(진덕),

 碩德(석덕), 順德(순덕)

 宗德(종덕) <박 8세>       고려가 망하자 안동 물계촌에 은거

  호는 물계(勿溪), 음직으로 감찰(監察)을 역임했으나 고려가 망하자 안동 물계촌으로 이거하여 맥수가(麥穗歌 은나라 충신 기자가 은의 고도를 지나며 지은 시)를 부르며 끝내 절의를 지켰다. 조선조에서 사헌부 장령(掌令)을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배위

경주 李씨 첨서밀직사사 월성군 이정견(李廷堅)의 따님이다. 할아버지는 장작소감(將作少監) 이육(李毓), 증조할아버지는 월성부원군 이경중(李敬中), 외할아버지는 밀직부사 광산 김천리(金天利)이다. 묘는  감천면 현내동 존당현 신좌(辛坐)에 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정전리에 있으며 방손 응교(應敎) 세백(世白)이 비음기를 지었다.

아들

子愼(자신)  子儀(자의)  子保(자보)  子儉(자검)

사위

鄭豫孫(정예손) 목사, 아들은 상(尙)

李承壽(이승수)  

배위 묘

일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