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宗德(종덕)고려/조선 장령

동생-子儀(자의), 子保(자보), 子儉(자검)

子愼(자신)<박사공 9세/1-37><통정공파>

  1397∼1454 자는 신지(愼之), 음직으로 경덕궁직, 1442년(세종 24) 12월 개령현감(開寧縣監), 이때 아래 사람들이 청백리로 존경했다. 도관좌랑, 조봉대부에 오르고 감찰, 1452년(문종 2) 2월 도사(都事), 1457년(세조 3) 원종공신에 오르고 마전군수(麻田郡守)를 역임했다.<왕조실록 4집 452, 461면>

  사화(士禍) 및 임란 등으로 400여 년 동안 공의 묘를 실전하였으나 1927년 16세손 재희(載熙)가 23세의 나이로 연천 공목공파보 편수시 나무가 무성한 묘 앞에 비가 땅에 묻혀 있었는데 비 상단에 "郡守(군수)" 두 글자를 발견하여 흙을 파헤쳐 보니 "郡守 姜子愼"이란 글자를 확인한 후 이 사실을 문중에 알리고 제천문중에서 묘역을 갖추었으나 지금은 남북 분단으로 가지 못한다.

 

 

배위

영인 경주 李氏(이씨), 1394∼1471. 아버지는 목사 반(蟠), 조부는 개성윤 창로(彰路), 증조부는 좌의정 계림부원군 익재 제현(齊賢), 외조부는 동지사 전성군(全城君) 전주 최을의(崔乙義). 묘는 공의 묘 뒤쪽인 진동면 대위동 마을 뒤 우측 산록에 있다.  

 

경기도 개풍균 진동면 대위리 두용골 간좌(艮坐)에 있으며 아들 사인 거효(居孝)가 비음기를 지 었다.

아들

居仁(거인) 평양판관, 居義(거의) 정읍현감, 居禮(거례) 한림, 居貞(거정) 별제, 居忠(거충) 감찰, 居孝(거효)○ 사인

 

사위

설致深(설치심) 경주인

孫繼重(손계동) 밀양인, 첨지 역임. 아버지 현사  혁(奕) 아들은 호(灝) 사직, 옥(沃) 감역, 결(潔) 사직, 윤(潤) 내금장, 사위는 남양 홍약유(洪若猷) 사직, 파평 윤사점(尹師點) 호군, 운봉 박의창(朴義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