恭穆公(휘 蓍)派譜  자료집

공목공 연보  강씨 상계 공목공 묘지명  발간사 및 축간사  편집후기  문과급제 진사생원   계보도  관직표  항렬 

 

 

용어(用語)

◇선계(先系)와  세계(世系)
  선계란 시조 이전의 조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며, 세계란 시조로부터 대대로 이어온 계통의 차례, 곧 가계를 일컫는 말이다.

◇비조(鼻祖)와  시조(始祖)
  비조(鼻祖)는 시조(始祖) 이전의 선계(先系) 조상 중 가장 높은 분을 말한다. 비슷한 말로 도시조(都始祖)가 있다.

   시조(始祖)는 초대의 선조 즉 첫 번 째 조상을 말한다.

 중시조(中始祖)는 시조 이후 쇠퇴하였던 가문을 다시 중흥시킨 분을 일컫는다.

 파시조(派始祖)는 하나의 본관을 기준으로 그 후손에서 나뉘어지는 계파의 조상이 된다.

◇득성시조(得姓始祖)와  득관시조(得貫始祖)

  득성시조는 한 성씨를 처음 얻은 조상이 되고, 득관시조는 그 중에서 하나의 본관(관향)을 정해서 나오게 되는 사람을 말한다.

◇본관(本貫) 혹은 관향(貫鄕)

  시조 혹은 선조의 출생지를 말한다. 성씨만으로는 동족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관이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 金씨라 하면 김해 김씨, 경주 김씨, 안동 김씨, 청풍 김씨 등에서 김해, 경주, 안동, 청풍 등이 본관이 된다.

◇본관(本貫)과 관적(貫籍)

  정자통에 의하면 본관이란 시조 혹은 중시조의 출신지 또는 씨족의 세거지를 일컫는 말로서, 본관은 향적(鄕籍)이라 하였으니 시조나 씨족의 고향을 대신하는 말이다.
  이를 관향 또는 본이라고도 하는데, 아무리 동성이라 할지라도 동족여부를 가늠하는 데는 본관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관적(貫籍)이란 씨족의 본적지란 뜻으로서 본관 대신에 관적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분관(分貫)과 분적(分籍)

  후손 중에 어느 일부가 다른 지방에 이주해서 오랫동안 살다가 그 지방을 근거로 관적(貫籍)을 새로이 창설하게 될 경우 자동적으로 본관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분관 또는 분적이라 하며, 이로 말미암아 새로이 설정된 시조를 시관조(始貫祖)라 일컫는다.

◇사관(賜貫)과 사성(賜姓)

  옛날에는 공신이나 귀화인에게 표상의 표시로 본관이나 성씨 혹은 이름까지도 국왕이 하사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사관이니 사성이니 또는 사명이라 일컫는다. 이는 삼국시대 초부터 있었으나 특히 고려조에 들어와서 가장 많았다.

◇선대(先代)와  말손(末孫)

  본래 선대란 말은 선조의 여러 대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나 보학상의 선대라 함은 시조 이전 상계의 조상을 총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방조(傍祖)와  족조(族祖)

  방조란 6대조이상의 그 형제를 일컫는 말이며, 족조란 방조 이외의 무복지조(無服之祖)를 일컫는 말이다. *무복지조(無服之祖) : 상(喪)이 났을 때 상복을 입지 않아도 되는 먼 조상

◇사조(四祖)와  현조(顯祖)

  사조(四祖)조란 내외 사조(四祖)의 준말로서 부(父), 조(祖), 증조(曾祖) 및 외조(外祖)의 총칭이며, 현조(顯祖)란 명성이 높이 드러난 조상을 일컫는 말이다.

◇행직(行職)과  수직(守職)

  행직이라 함은 관원의 관직이 품계(品階)와 상등하거나 품계보다 임직(任職)이 얕은 때에는 이를 행직이라 하는데 그 직함에는 "행(行)"자를 붙인다.
  관원의 품계보다 관직이 높을 경우에는 이를 수직이라 하는데, 그 직함 앞에는 "수(守)"자를 붙인다.

 ◇증직(贈職)

  증직이란 종친(왕족)이나 종2품 이상의 관원의 부, 조, 증조 또는 충신 효자 혹은 학행이 고매한 사람에게 사후에 관직과 품계를 추증(追贈)하는 벼슬이다.

 ◇수직(壽職)

  수직이란 매년 1월에 80세 이상의 관원과 90세 이상의 서민에게 은전을 주는 직품이다.

 ◇음직(蔭職) 과  음관(蔭官)

  음직이란 조상의 공덕으로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말하며, 음관이란 소과에 급제한 진사나 생원 또는 급제하지 못한 유학(幼學)이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유학(幼學) : ‘벼슬을 하지 아니한 유생(儒生)��을 이르던 말

◇영직(影職)과  검교(檢校)

  영직이란 예컨데 중추부와 같이 실제로 근무하지 아니하고 이름만 빌리는 벼슬이기 때문에 이를 차함(借銜)이라고도 한다.

  고려말, 조선 초기의 인물에 벼슬 이름 앞에 검교(檢校)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실제의 직책을 맡지 않은 임시직, 또는 명예직을 나타낸다.

◇천거(薦擧)

   천거는 사림(士林) 중에서 학행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재야 인물을 현지 고관이나, 지방관의 추천으로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逸+관직명

  관직명 앞에 붙은 "逸"은 유일지천(遺逸之薦)에서 온 것입니다. 이는 과거제 이외에 관리를 등용하는 방법으로 일종의 천거제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덕행이나 학행 혹은 효행이 뛰어난 사람을 천거에 의해 등용한 경우에 逸(일)자를 관직 이름 앞에 붙이곤 했다. 이러한 천거제는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중종 때 잠시 시행된 현량과가 전부다.

◇계․사․직(階․司․職)

  관직의 정식 명칭은 계․사․직(階․司․職) 순서로 적는다. 계(階)는 품계, 사(司)는 소속 관청, 직(職)은 직위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통상 영의정이라 함은 대광보국(大匡輔國)<階>의정부(議政府)<司>영의정(領議政)<職>이 된다.

◇세(世)와  대(代)

   세(世)는 시조를 1세로 하여 차례대로 내려와 자기까지의 수를 말하는 반면에, 대(代)는 자기를 뺀 나머지 수를 말한다. 즉 세(世)는 점(點), 대(代)는 공간(空間) 개념이다.

세(世)와 세손(世孫)은 다르다→ 세-1=세손=대손

  보통 시조를 1세(世)로 하여 아래로 내려갈 경우에는 '세(世)'라고 하지만 이미 옛적부터도 '대(代)'라는 말 또한 흔하게 쓰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1대(代)로 하여 올라가며 계산하는 것을 보통은 대(代)라고 하지만 윗대에 대하여 '1세조, 2세조, 3세조……'로 일컬은 바 또한 흔하였다.

  그러나 흔히 자기의 조상을 몇 대조 할아버지라고 하고, 자신은 시조 또는 어느 조상으로부터 몇 세 혹은 몇 세손이라고 한다. 다만 시조로부터 '몇 세'와 '몇 세손'은 같은 말이 아니다. 가령 26세 째에 해당하는 사람은 시조로부터 '25세손, 혹은 25대손' 이라 한다.

 ◇파(派)  이름

  같은 조상에서 딴 갈래로 이루고 나온 계통으로 보통 그 조상의 벼슬 이름, 시호(諡號), 혹은 호(號)를 따서 그의 후손들이 파의 이름을 짓는다.

  박사공파 -고려 말 국자 박사를 지낸 휘 계용(啓庸) 선조님의 벼슬 이름을 따서 파의 이름을 지었다.     

  공목공파 -고려 말 문하찬성사를 역임한 휘 시(蓍) 선조님의 시호를 따서 지은 파의 이름이다.  

  통정공파 -고려 말 정당문학을 지낸 휘 회백(淮伯) 선조님의 호를 따서 파의 이름을 지었다.

 ◇족보의  기록 요건

  1) 항렬자를 갖춘 휘(諱 돌아가신 높은 어른의 이름)  

  2) 출생과 사망 년원일 및 생존기간

  3) 자(字)와 호(號), 혹은 별명(別名)

  4) 각급 과거 급제 기록

  5) 관직명(실직과 증직, 수직)

  6) 배필의 본관 및 내명부의 품계, 생년, 사망 년월일, 가족 관계를 기록

  7) 묘소의 소재지와 좌향 관계 및 내외의 봉분 형식을 기록

  8) 묘비, 상석, 망주석 등의 유무 기록

  9) 학행, 효행, 의행, 공훈 등을 기록

 10) 사료(史料)의 출처 기록

 11) 출계(出系) 기록

 ◇항렬자(行列字)

  방계 혈족 사이의 대수(代數), 세계(世系) 관계를 나타내는 글자로 각 문중에서 일정한 규칙을 정하여 대대로 써오는 작명 제도의 일종이다. 형제간은 한 항렬에 속하며, 이름에 항렬자를 같은 글자를 넣음으로써 같은 세계(世系)임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자 성명이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시대부터이고 고려시대에는 서민층까지 보급되었다. 항렬자만 보아도 어느 가문 몇 대손(代孫)임을 알 수 있는 독특한 작명제도이며 오늘날에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항렬자를 정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대체로 오행상생법(五行相生法) 즉 金→水→木→火→土→金…으로 항렬자를 쓰는 경우가 가장 많다.

◇생졸(生卒)  표시  : 기존의 족보에는 출생과 사망 년도를 60 간지(干支)로 표시했다.

  출생은 생(生)으로-만력 정유생(연호+간지), 숙종 경술생, 숙묘 경술생(왕대+간지),

  사망은 졸(卒)로-만력 정유졸(연호+간지), 숙종 경술졸, 숙묘 경술졸(왕대+간지),

  70세 미만은 「향년 ○○세」, 70세 이상은 「수(壽) ○○세」로 기록한다.

  그러나 최근에 간행되는 보책과 특히 한글로 된 보책에는 서기(西紀)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자(字)  

   이름을 소중히 여겨 본 이름 외에 부르기 위해 지은 이름으로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기 위해 웃어른들이 지어주는 이름이다.

◇호(號)

   본 이름이나 자(字) 이외에 허물없이 쓰기 위해 지은 이름으로 성년이 된 후에 사용했다.   

◇함자(銜字)와 휘자(諱字)

  살아 계신 분에 대하여는 함자라 하고,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는 휘자라 한다.

 ◇후사(後嗣)와  양자(養子)

  후사란 뒤를 잇는다는 뜻으로, 계대를 잇는 자손을 말한다. 만약 계대(繼代)를 이을 자손이 없는 경우에는 "무후", 양자로 출계하였을 경우에는 "출후", 서얼로서 입적되었을 경우에는 "승적", 그리고 후사가 확실치 않아 확인할 수 없을 때에는 "후부전" 이라 칭한다.

◇위패(位牌)

  유교(儒敎) 의식(儀式)에 따라 돌아가신 어느 위(位)를 상징하고 모시기 위하여, 나무에 해당하는 위(位)을 적어 넣어 만든 패(牌)이다. 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국기를 만들 듯이, 돌아가신 위를 상징하여 모시기 위하여 위패를 만든다. 위패를 "신주(神主)"라고도 부른다.

◇사당(祠堂)

  위패를 모셔두기 위하여 만들어진 집을 사당이라 한다.

◇감실(鑒室)

  위패를 모셔두기 위하여 만들어진 방을 감실이라 하며, 사당 안에는 감실이 있다. 그러나 사당을 별도로 만들지 못한 경우에는 사랑방 마루의 지붕 아래에 감실을 만들어서 위패를 모신다.

◇4대(代)  봉사(奉祀)

  자기로부터 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는 차례로 1대, 2대, 3대, 4대로 계산하며, 고조부는 4대조가 된다. 사림(士林) 층의 제사는 고조부까지 드리며, 이를 4대 봉사(奉祀)라 하며, 4대 이상은 위패를 조매(挑埋:위패를 땅에 묻는 것)하고 더 이상 그 위(位)에 대하여 기제사(忌祭祀: 해마다 지내는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불천위(不遷位)

  나라에 큰 공이 있거나 학행이 높은 위에 대해서는 조매하지 않고 영원토록 모시는 위를 불천위 또는 부조위라 하며, 해마다 기일(忌日)에 제사를 올리며 이를 불천위 제사라 한다. 불천위는 예조의 승인에 의했으나, 나중에는 도(道)의 유림에서 승인 또는 서원에서 인정하는 불천위가 생겨났으며, 이를 구별하기 위하여 국불천(國不遷), 도불천(道不遷), 원불천(院不遷)으로 구별하여 부르기도 한다. 한 집에 불천위가 2위 이상 있으면 각각 사당을 따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묘소(墓所)

  묘소란 분묘의 소재지를 말하는 것으로 족보에는 "묘(墓)"자 만을 기록하고, 좌향[(坐向:묘가 위치한 방향:방위(方位)]과 석물 등이 있을 경우에는 이를 표시하여 합장의 여부 등도 기록한다.

  좌향은 대개 '○좌'로 표시하는데 예를 들어, '자좌'라 하면 자는 정북을 나타내 북을 등졌다는 뜻이므로, 정남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 '좌우'는 사자(死者)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므로, 묘를 바라보는 사람의 좌우에는 정반대가 되며 좌는 동․우는 서가 된다.

  [합봉, 합묘]는 두 부부를 한 봉분으로 합장했다는 말이고, 쌍봉은 같은 묘소에 약간 거리를 두고 두 봉분을 나란히 만들었다는 것이다.

◇묘계(墓界)

  묘계는 무덤의 구역으로 품계에 따라 무덤을 중심으로 1품은 사방 100보, 2품은 90보, 3품은 80보, 4품은 70보, 5품은 50보, 생원, 진사는 40보 그리고 서민은사방 10보로 제한하였다.

◇묘포(墓表)

  표석이라고도 하며 죽은 사람의 관직 이름과 호를 앞면에 새기고, 뒷면에는 사적(事績) 또는 비석을 세운 날짜와 비석을 자손들의 이름을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이다.

◇묘지(墓誌)

  지석(誌石)이라고도 하며, 천재지변 또는 풍우(風雨)나 우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묘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비해, 금속판이나, 돌, 도자기 판에 죽은 사람의 원적(原籍)과 성명(姓名), 본관,  성행(性行), 경력 등의 사적을 서술한 것이다.

◇묘비(墓碑)와  비명(碑銘)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의 총칭이며, 비명이란 비에 생긴 글로서 명문, 비문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고인의 성명, 본관, 원적, 성행, 경력 등의 사적을 서술한 것이다.

◇신도비(神道碑)

  임금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대개 무덤 동남쪽에 위치하며 남쪽을 향하여 세우는데, 신도라는 말은 사자의 묘로 가는 길, 즉 신령의 길이라는 뜻이다.

  원래 중국 한나라에서 종2품 이상의 관리들에 한하여 세워진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3품 이상의 관직자의 묘에 세운 것으로 보이나 현존하는 것은 없으며, 조선시대에 와서 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세우는 것을 제도화하였다.

  왕의 신도비로서는 건원릉의 태조 신도비와 홍릉의 세종대왕 신도비가 있으며, 문종은 왕릉에 신도비를 세우는 것을 금지하여 그 이후에는 왕의 신도비는 세우지 않았다.

◇묘갈(墓碣)

  신도비와 비슷하나 3품 이하의 관리들 무덤 앞에 세우는 머리부분이 동그스름한 작은 돌비석으로 신도비에 비해 그 체재와 규모가 작고 빈약하다.

◇묘(墓)

  ◦부(祔) : 합사(合祀), 합장하다 ◦합부(合祔)/합조(合兆)/합농(合壟) : 합장하다

  ◦합폄(合窆) : 무덤의 구덩이 속에 함께 시신을 넣어 합장한 것.

  ◦쌍분(雙墳) : 같은 묏자리에 있어 합장(合葬)하지 아니하고 나란히 쓴 남편(男便)과 아내의 두 무덤  

  ◦면례(緬禮)/면봉(緬奉) : 무덤을 옮기어 장사(葬事)를 다시 지냄

◇조(祖)와  종(宗)의 차이

  태조, 정조, 태종, 세종,...고종, 순종 이런 명칭은 임금의 시호로, 특별히 묘호(廟號)라고 한다. 묘호는 임금이 죽은 후 종묘에 그 신위를 모실 때 드리는 존호이다. 묘호로는 조(祖)와 종(宗)의 두 가지를 쓴다.

  신라 시대에는 무열왕이 태종이란 묘호를 가졌고,

  고려 시대에는 태조만이 祖자의 묘호를 가졌고 나머지 왕들은 宗자의 묘호를 가졌다.

  조선 시대에는 태조 외에도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등 祖자 묘호가 많이 나타난다.

  조(祖)나 종(宗)을 쓰는 데는 꼭 일정한 원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대체로 조(祖)는 나라를 일으킨 왕이나 국통, 즉 나라의 정통이 중단될 위기에서 이를 다시 일으킨 왕에게 쓰고, 종(宗)은 왕위를 정통으로 계승한 왕에게 붙였다. 이와 같이 조(祖)가 창업이나 중흥의 업적을 남긴 왕에게 붙인다고 해서 은연중에 조(祖)가 종(宗)보다 격이 높다는 관념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역대 왕들의 업적을 평가해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 조선왕조실록 태조 1년 11월

"공 있는 이는 조(祖)로 하고 덕 있는 이는 종(宗)으로 하니,.."

시호(諡號)는 어떻게 정하여 졌을까?

  시법(諡法)은 왕조시대(王朝時代)의 한 제도이며, 문무관(文武官), 유현(儒賢), 사절(死節)의 한 평생을 공의(公議)에 따라 엄정하게 평론(評論)하고 행적(行蹟)의 대표적인 일을 뽑아 두 글자로 요약하여 죽은 개인의 선악(善惡)을 나타내어 후세(後世) 사람들에게 권장하고 징계하는데 의의(意義)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시호를 정하는 절차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국왕이나 왕비가 죽은 경우에는 시호도감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엄격한 절차에 따라 시호가 정해졌다. 국왕이 아닌 일반인의 경우는 봉상시에서 주관하여 증시(贈諡)하였는데, 그 절차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종친(宗親)이나 정2품 이상의 문무관(文武官), 비록 직위는 낮더라도 친공신(親功臣)에게 시호(諡號)를 주도록 규정하였는데 종2품 대제학(大提學) , 유현(儒賢)이나 사절(死節)한 자(者)로서 세상에 드러난 자는 정2품이 아니더라도 특별히 시호를 주었다. 시호는 생존시의 행적(行蹟)에 의하여 국왕이 내리는 이름이다.

  시호를 내리는 것을 증시(贈諡)라하고 후대에 추증(追贈)하여 시호를 내리는 것을 추시(追諡)라고 한다.

  1. 시호를 받을만한 사람이 죽으면, 그 자손이나 인척 등이 행장을 작성하여 예조에 제출한다.

  2. 예조에서 행장을 검토하고 봉상시(奉常寺)로 보내고. 봉상시에서는 행장에 근거하여 합당한 시호를 평론하여 세 가지 시호를 정하여 홍문관으로 보내는 데. 이를 시장(諡狀)이라 한다.

  3. 홍문관에서는 응교 이하 3인이 삼망(三望)을 의논한 뒤, 응교 또는 부응교가 봉상시정(奉常寺正) 이하 제원(諸員)과 다시 의정(議定)하며, 의정부에서 서경(署經)하여 시장과 함께 이조(吏曹)에 넘긴다.

  4. 이조(吏曹)에서는 시호 망단자를 작성하여 국왕에게 입계(入啓)하여 수점(受點)을 받는다.

  5. 국왕의 수점 후에 대간의 서경(서명)을 거쳐 확정된다.  

  6. 국왕의 특별한 교지로 시호를 주는 경우에는 예조(禮曹)에서 행장(行狀)을 접수(接受)하는 일 없이 홍문관에서 직접 정일(定日)하여 봉상시(奉常寺)에서 합석(合席) 부대시장(不待諡狀) 합의를 이루어 곧바로 시호를 내리는 예(例)도 있었다.

  참고로, 이순신의 경우 봉상시에서 의논한 세 가지 시호는 忠武, 忠壯, 武穆이었다. 이때의 각 글자의 뜻은,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임금을 받드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쳐들어오는 적의 창끝을 꺾어 외침을 막는 것을 무(武)라 하고, 적을 이겨 전란을 평정함을 장(壯)이라 하고, 덕을 펴고 의로움을 굳게 지킴을 목(穆)이라 풀이하였다.

시호에 쓰이는 글자

  봉상시에서 시호에 쓰는 글자는 사기(史記)의 시법(諡法) 194자였다. 1438년(세종 20) 시호

(諡號)에 쓰이는 자수(字數)의 부족으로 시의(諡議)에 있어 사실(事實)에 맞게 하기 어려운 점을 들어 증보(增補)할 것을 상계(上啓)하여 세종(世宗)의 하명(下命)으로 집현전(集賢殿)에서 의례(儀禮), 문헌통고(文獻通考) 등을 참고하여 107자를 추가(追加)하였다. 이로써 시법에 쓸 수 있는 글자는 모두 301자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자주 사용된 글자는 문(文) 정(貞) 공(恭) 양(襄) 정(靖) 양(良) 효(孝) 충(忠) 장(莊) 안(安) 익(翼) 무(武) 경(敬) 등 120자 정도였다. 한 글자의 뜻도 여러 가지로 풀이되어 시호법에 나오는 의미는 수 천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文자는 經天緯地(온 천하를 경륜하여 다스리다), 勤學好問(배우기에 부지런하여 묻기를 좋아한다), 道德博聞(도덕을 널리 들어 아는 바가 많다), 忠信愛人(충과 신으로 남을 사랑한다), 敏而好學(총명하여 학문을 좋아한다) 등 15가지로 쓰였다.

  시호(諡號)에 쓰인 글자가 악(惡)하고 사나운 행적(行蹟)의 사람에게 쓰인 글자라고 하여서 상청(狀請)을 사퇴(辭退)하고나 개시(改諡)를 청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개시(改諡)된 기록을 볼 수 있다. 시호가 모두 좋은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각 성씨의 종친회에서 나쁜 시호를 받은 경우는 높은 관직에 올랐더라도 아예 그 사람의 이름조차 거론하기를 꺼리며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은 시호를 못 받은 임금들이다.

참고문헌 : 이기호(李氣浩), 「祖先의 諡號 考察」, 「仁敬彙報」7號,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