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淮仲(회중)

  형-安壽(안수) 安福(안복)

 安命(안명)<박 8세>

  여지승람(輿地勝覽)과 해동삼강록(海東三綱錄), 진주읍지(晉州邑誌)에 의하면 아버지 통계공이 조정에서 물러 나와 매일 이웃 노인들과 더불어 술을 즐겨하므로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고, 상을 당하자 너무나 애통해 하면서 예를 다하고 살아 생전처럼 시묘(侍墓)하면서 살았다하여 1450년(세종 32)에 나라에서 효자 정려(旌閭)를 내렸다. 통계공 묘소의 동네 이름이 지금도 시묘골이다.

배위

 

  

김제군 백산면 송하리에 봉단을 세웠다. 

아들

純(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