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君寶(군보) 고려 문하좌시중 시호는 문공

형-蓍(시)○고려 좌찬성

(서)<박사공 6세/1-16> 좌의정  지내

  1347∼1424 자는 면녀(勉汝), 호는 청은(淸隱). 음직으로 벼슬에 나아가 통례문 사인(舍人), 위위시승(尉衛寺丞), 군기시 소윤, 비순위 정용(備巡衛精勇), 호군(護軍), 삼사좌윤(三司左尹), 판군기감사, 친어군(親御軍) 상호군으로 전임하고, 밀직사 우대언, 전리판서(典理判書)로 승진하고 1379년(우왕 5) 밀직부사(密直副使) 재임중 장인 이인임(李仁任)의 사거 후 자리에 물러났다가 1382년(우왕 8) 판밀직사사, 1894년(우왕 10) 문하평리, 1391년(공양왕 3) 경상도병마도절제사, 1403년(태종 3) 판승녕부사에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전임되고 1415년(태종 15) 검교 의정부 찬성사가 되고 이듬해 물러났다. 1418년(세종 원년) 보국숭록 죄의정으로 가죄되고 물러나 1424년(세종 6) 10월 19일 별세했다. 1375년(우왕 2) 화척(禾尺)이 떼를 지어 거짓  왜구가 되어 경상도 영해군에 침입하여 관아와 민가를 노략질하자 판밀직 임성미(林成味)와 함께 나아가 남녀 50여 명과 말 200여 필을 추포하여 공을 세운바 있다. 시호는 양희(良僖). <조선왕조실록 2집 633면-의정부 좌의정으로 치사(致仕)한 강서(姜筮)가 졸(卒)하였다. 서(筮)는 진주 사람으로 봉산군(鳳山君) 문경공(文敬公) 강군보(姜君寶)의 아들이다. 어머니 군부인 계림 김씨는 생전에 매양 둘째 아들 서(筮)에게 "점장이가 네 나이 삼십을 넘지 못하고 벼슬은 4품을 지나지 못한다 하였으니 너는 근신하여 이 어미에게 근심을 끼치지 말도록 하여라"하여 둘째 아들은 항상 겸손하고 세상을 두려워하여 조금도 함부로 행동하지 아니하여 벼슬은 좌의정에 78살까지 살았다.

 

 

배위

정경부인 성주 李氏(이씨), 아버지는 시중 광평부원군 문숙공(文肅公) 인임(仁任), 할아버지는 시중 경원공(敬元公) 보(보), 증조할아버지는 성산후(星山侯) 문렬공 조년(兆年)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팔야리 산 83번지 유좌(酉坐)에 합장. 6촌 동생 손기(孫奇)가 쓴 제문과 만사가 있다. 한 때 실전하였으나 후손 두성(斗聲)이 성심을 다하여 1954년 다시 찾았다.

아들

策(책) 종부시승,詮(전) 봉상시 첨정,  籌(주) 공조참판, 餘(여) 대호군

 

 

사위

崔士康(최사강)  전주인(全州人) 문과 좌찬성 경절공. 아버지는 좌찬성 평도공 유경(有慶). 아들 증좌의정 승녕(承寧), 사위는 태종대왕 아들 성녕군 인(인), 부사 안동 권총(權聰), 진주 강혜(姜혜) 청풍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