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子平(자평)○ 전라감사

동생-◇, ○, ○, , ◇  

(형)◇○<박사공 11세/1-128><대호군공(휘 휘)…통계공파>

  1451∼1504년 10월 4일 별세, 자는 형지(형之). 1472년 진사시에 입격하고 1490년(성종 21) 평양판관, 장예원 사평(司平)으로 별시문과(別試文科) 병과(丙科)에 급제. 12월 조산대부 사간원 정언, 지평(持平), 1495년(연산군 1) 12월 장령(掌令)을 지냈다. 그후 선산부사를 지내고 1504년(연산군 10) 대사간에 재직 중 아우들, 사위들과 더블어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비로 추숭하여 성종묘에 배사코자 할 때 이에 반대하는데 앞장서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수창자(首唱者)로서 능지처참(陵遲處斬)되었다. 이때 3형제 모두 피화를 입었으나 중종반정 후 모두 신원되었다. 성품이 너그럽고 공평했으며 정직하고 지조 절개가 있었다.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吏曹判書) 겸 지경연춘추관 성균관 의금부사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 세자좌빈객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추증되고 봉강서원에 배향되었다. 후손 직(稷)이 가장을 지었다. <왕조실록 11집 464면∼16집527면>

 

 

 

 

배위

증정부인 선산 金氏(김씨) 1504년 11월 25일 주야로 울부짖다가 피를 토하고 별세했다. 1506년(중종 1) 정려가 내려졌으나 오랜 세월동안 훼손되어 1994년 3월 상주시 신봉동 봉강서원 쪽에 이전 중건했다. 배위의 아버지는 진산군수 승경(承慶), 할아버지는 좌랑 영륜(永倫), 증조할아버지는 소감 사지(四知), 외할아버지는 인수부윤 순흥 안숭신(安崇信)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7동 난곡 건좌(乾坐)에 합장했다. 한호(韓濩)가 쓴 묘표가 있다.  

아들

永叔(영숙) 별제, 증좌찬성, 茂叔(무숙)◇, 與叔(여숙),

世叔(세숙)<왕조실록 13집 675면>

사위

許磐(허반) 양천인, 문과 정자, 무오사화 5현 중 한 사람, 아버지는 사지 연(연), 사위는 의성부정 충정(忠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