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子平(자평)○전라감사

형-○, ◇, 동생-○, ,

(집)◇○<박사공 11세/1-134><통계공파>   

  1458년 5월 17일생∼? 자는 집지(집之), 호는 정재(貞齋),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서 1474년(성종 5) 갑오식년 사마시에 입격하여, 후릉참봉(厚陵參奉), 예빈시별제(禮賓寺別提)로 재임 중 1492년(성종 23) 임자별시문과(壬子別試文科)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영천군수(永川郡守)를 거쳐 예문관 응교(應敎)를 지내고 1529년(중종 24) 3월 제감(祭監)에서 1자급 올랐다. 1500년(연산 6) 5월 사헌부 장령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 그후 홍문관 교리(校理)를 지내고, 1504년 갑자사화 때 연좌되어 함경북도 온성에서 유배 중 자손에게 훈계하기를 형님의 참화를 도저히 볼 수 없으니 나를 이곳에 묻어달라고 하여 자손들이 그곳에 살게 되었다.

 

 

배위

숙인 남원 梁氏(양씨), 아버지는 감사 순석(順石),

숙인 풍천 盧氏(노씨), 아버지는 판서 내(내), 조부는 대사헌 숙동(叔同), 외조부는 서원군 정효충(鄭孝忠).

숙인 경주 李氏(이씨), 아버지는 사직 팽수(彭壽).

 묘

함북 온성군(穩城郡) 영달동 달림산 해좌(亥坐). 1860년(철종 11) 홍원군 쇄낭산(碎娘山) 세덕사에 배향했다. 남쪽으로 온 후손들이 용보원 선영 계단 아래 단을 세워 향사한다.

아들

仁輔(인보) 직장, 公輔(공보) 주부, 忠輔(충보) 이천현감

사위

蔡堯壽(채요수) 인천인, 李沈(이침) 경주인 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