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師瞻(사첨) 감찰어사

 형-昌富(창부) 동생-昌壽(창수)

 昌貴(창귀)<박 4세> 선세 가업 계승토록 아들에게 과거응시토록 허락  

음직으로 판도정랑(版圖正郞)에 오르고,1346년 (고려 충목왕 2) 계림판관(鷄林 判官)으로 부임하여 경북 영천(永川)으로 이임(移任)하였다. 아들 군보(君寶)의 공적으로 문하시중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에 증직되었다. 후손 진형(震馨)이 묘지를 짓고 후손 교관 석하(錫夏)가 찬사(贊辭)를 지었다. 1994년 대동보 편찬 후 묘정을 정화하고 구비는 계단 아래에 묻고 비를 고쳐 세웠다.

배위

영가군부인 안동 權氏(권씨), 아버지는 합 문지후 윤보(允保), 할아버지는 검 교장군 금자광록대부 상서좌복야에 봉해진 자여(子輿), 증조할아버지는 상서 좌복야 상장군 수홍(守洪)이다.

  

묘

경남 합천군 율곡면 갑산리 마을 뒤 용덕산 임좌(壬坐)에 쌍분이다.

아들

君寶(군보)○ 고려 문하좌시중

 진원부원군(휘 창귀) 찬-교관 석하 지음  

先志克遵 선대 뜻을 잘 따라

恥隨貢於計吏 계리된 것을 부끄러워 했으나

下位終屈 낮은 지위도 마침내 굽혀

甘晦跡於潛郞 잠랑으로 기꺼이 자취 감추었네

張侯之官不成 장후의 벼슬 이루지 못한 것이

豈非天意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며

王氏之福未艾 왕씨의 복이 끊이지 않아

大昌雲仍 후손이 대창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