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克儉(극검) 선략장군 충좌위 부사과, 충의위

형- 海◇, 濬, 동생-沆○, 泳◇

渙(환)◇<박사공 14세/11-63><문량공(휘 희맹)…통정공파> 澳

  1565∼1638, 자는 景凝(경응), 호는 퇴은(退隱). 영광에 살았다. 율곡 이이(李珥)의 문인. 항상 절의에 깊은 뜻을 두고 공부하였으며 부모 형제간에 남달리 효우하였다.

  1596년 정유재란 때 형 회은(晦隱) 준(濬), 아우 수은(睡隱) 항(沆)과 함께 통제사 이순신의 휘하로 가기 위해 뱃길로 서상하다 왜선에 잡혀 포로가 되어 일본 이예주(伊豫洲) 대진성(大津城) 대판, 복견(伏見) 등에 옮겨가며 포로생활을 하다가 일본 학자(승려)들과 교우하며 유학(儒學)을 전수하고 글을 써주며 한편으로는 적정(敵情)을 탐지하여 인편으로 고국에 알렸다.   

  강씨 3형제의 절개와 인품에 감복한 일본 학자들이 좌도(佐渡) 성주에게 권하여 1600년 봄 포로생활 4년에 굽힘없이 절개를 지키고 풀려나 귀국하였다.  

  궐하에 대명하니 선조께서 술과 말을 하사하시고 근친케 하였다. 부모님 사후인 1624년(인조 2) 증광(增廣) 사마시(司馬試) 進士(진사) 3등에 입격하였다. 1625년 목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항상 맏형 저어당 해(瀣)의 피화를 슬퍼하며 명리를 멀리하고 도학절의에 뛰어났다. 방손 진사 주영(柱榮)이 지은 행장이 있고 이 사실이 호남절의록에 실려 있다.

 

배위

의인 광산 金氏(김씨) 9월 20일 별세, 아버지는 부장 聲遠(성원), 조부는 참봉 漢璉(한련), 증조부는 영의정 潑(발), 외조부는 함양 吳世豪(오세호), 묘는 부군의 우측 기슭에서 임자년 7월 합장했다

 

묘

영광군 군남면 용암리 평암 마을 뒤

(시향은 10월 15일)

아들

時奭(시석) 절충장군 부호군, 時夏(시하)  돈녕부 직장, 時允(시윤) 선략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