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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克儉(극검) 선략장군 충의위 부사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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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瀣)(해)◇<박사공 14세/11-60><문량공(휘 희맹)…통정공파> 1554∼1591, 초명은 견(견), 자는 子容(자용), 호는 저어당(齟齬堂). 영광에 살았다. 율곡 이이(李珥)의 문인으로 동생 항(沆)과 함께 아버지 생전인 1588년(선조 21) 사마시(司馬試) 식년(式年) 진사(進士) 2등에 입격했다. 선조가 어제(御題)에서 호남에는 강해(姜海)의 부(賦), 중국 낙양에는 권필(權필)의 시(詩)가 있다고 칭찬하였다. 1590년(선조 23) 동인들의 무고에 휘말려 1591년 북도에 장배되어 가던 중 장독으로 별세했다. 후에 신원되었다. 공의 시가 기아(箕雅)에 실렸으며 3문장 중 1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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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 |
영광 丁氏(정씨), 아버지는 직장 希彦(희언), 조부는 별제 琦(기), 증조부는 지제교 世光(세광), 외조부는 장령 광산 盧大蓄(노대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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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
영광군 불갑면 박산 경좌에 쌍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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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
時伯(시백) 통덕랑, 생부는 泳(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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