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한(漢)◇ 판결사 호 금재(琴齋)

형- 신우(愼友)

謹友(근우)<박사공 11세/1-165><군위군(휘 이경)…통계공파>

   ?~1544년 자는 신지(愼之). 진사에 등과하였다. 효성과 우애를 타고 났으며 문장이 세상에 뛰어났다. 고향 사람들의 추천으로으로 승사랑(承仕郞) 경기전(慶基殿) 참봉을 역임했다.

배위

양성 이씨(李氏), 아버지는 진사 수인(守仁), 조부는 원종공신 형(蘅), 증조부는 판서 백량(伯良), 외조부는 부사 고령 신자강(申子杠) 묘는 나주군 염동에 있었으나 실전되어 아들의 묘 위쪽에 단을 세웠다.

 

단인 남원 양씨(梁氏)이며 배위의 아버지는 참봉 응기(應麒) 조부는 판서 관(灌)이다. 묘는 상하로 썼다.

함양군 동면 입석동 손좌(巽坐)에 있으며 방후손 대사간 태중(泰重)이 지은 비명이 있다.

아들

삼(參) 익(翼) 진(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