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希孟(희맹)좌찬성

 동생-鶴孫(학손)

  龜孫(귀손) <박사공 10세/1-93><통정공(휘 회백)파>

  1450(세종 32)∼1505년 8월 17일 별세, 자는 용휴(用休), 1468년 진사에 올라, 음보(蔭補)로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돈령부 첨정(敦寧府僉正) 등을 지낸 뒤 1479년(성종 10) 정광세(鄭光世) 방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482년(성종 13) 2월 통훈대부 사헌부 집의, 8월 경차관, 1487년 사복시정, 사재감정(司宰監正), 좌통례(左通禮)를 거쳐 1485년 상주목사가 되고 1492년(성종 23) 10월 통정대부 장례원 판결사(判決事), 이듬해 5월 홍문관 부제학(副提學), 참찬관, 1494년 우부승지, 좌부승지, 예방승지, 1496년(연산 2) 3월 좌승지, 10월 도승지(都承旨)를 거쳐 1497년(연산군 3) 6월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다. 1498년(연산 4) 4월 병조참판,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김일손(金馹孫) 등을 가볍게 벌하도록 주장했다. 5월 사헌부 대사헌, 7월 정헌대부 형조판서, 동지사, 1499년(연산 9) 1월 이조판서, 한성부판윤, 진원군, 2월 병조판서 겸 판의금부 동지경연사, 1500년 6월 도총부도총관, 세자책봉의 주문사(奏聞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밭 50결과 노비 8명을 하사받았다. 병조판서, 1504년 우찬성, 1505년(연산군 11) 6월 대광보국 숭록대부 우의정 겸 영경연춘추관 관상감사 세자부 진원군에 봉해지고 하등극사(賀登極使)로 명나라에 가던 도중 등창으로 평안도에서 병사했다. 시호는 숙헌(肅憲). <왕조실록 10집 29면∼14집 133면> 성현(成峴)의 「용화총재」에 보면 남문밖에 승지(承旨)가 많이 배출된다고 했는데 역시 남문 밖에 살았다. 아버지 진산군(晉山君)의 명을 받고 통정공(通亭公)의 유적을 찾다가 통정공의 관직명을 딴 정당매화(政堂梅花)를 찾고 그 옆에 새로 두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배위

정경부인 은진   宋氏(송씨), 목사 요년(遙年), 할아버지는 판관 계사(繼祀), 증조할아버지는 쌍청당 유(愉), 외할아버지는 판관 나주 김양(金壤), 묘는 합장했다.

정경부인 연일 鄭氏(정씨), 아버지는 군수 정상긍(鄭尙矜), 아들 한 분을 두었다.

시흥시 수암동 상하리 선영 아래 우측 산 신좌(申坐)에 있으며 은진 송조빈(宋朝彬)이 짓고 방손 정희(正熙)가 전서를 아울러 쓴 신도비가 있다. 후손 교관 석하(錫夏)가 찬한 글이 전해지고 있다.

아들

台壽(태수)  순천도호부사, 생부 鶴孫(학손), 二儀(이의) 증 제학

사위

 砥山(지산) 金暾(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