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碩德(석덕) 좌찬성

동생-希孟(희맹)○, 希曾

希顔(희안)◇○<박사공 9세><통정공파> 詩書畵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블렀다

   1418∼1464 자는 경우(景愚), 호는 인재(仁齋), 1438년 생원에 오르고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1444년 돈령부 주부(敦寧府主簿)가 되었으며 의사청(議事廳)에서 언문으로 운회(韻會)를 번역하였고, 4월 황금으로 만든 소신지보(昭信之寶)에 전서를 쓰고 성령대군 집에서 불경에 금자(金字)를 쓰기도 했다. 1447년 이조정랑, 1450년 부지돈령(副知敦寧), 1451년(문종 1) 8월 수사헌부 장령(守司憲府 掌令)을 거쳐 1454년(단종 2) 집현전 직제학(集賢殿 直提學)이 되었고, 1456년(세조 2) 6월 예조참의, 단종 복위 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신문을 받았으나, 성삼문(成三問)의 변호로 화를 면하고 12월 첨지중추원사, 1458년 호조참의(戶曺參議) 겸 황해도 관찰사가 되었다. 이어 이조참의, 1462년(세조 8)에 인수부윤(仁壽府尹)으로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7월 행상호군 9월 중추원부사, 시, 서, 화(詩書畵)에 모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일컬어졌으며, 중국에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정인지(鄭麟趾)등과 함께 세종이 지은 정음(正音) 28자에 대한 해석을 상세하게 덧붙였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의 주석을 붙일 때도 참여했다. 또한 세조 때 을해자(乙亥字)의 글씨를 쓴 바 있다. 1464년(세조 10) 10월 9일 별세하였다. <왕조실록 4집 542면∼9집 347면> [저서, 작품] 菁川養花小錄(청천양화소록)

 

 

 

배위

정부인 고성 李氏(이씨), 아버지는 지통례 곡(谷), 조부는 좌의정 용헌 원(原), 증조부는 밀직제학 강(岡), 외조부는 사예 강양 이양명(李陽明), 무육(無育)  

정부인 언양 金氏(김씨), 아버지는 주부 중행(仲行), 조부는 감사 소(素), 증조부는 감사 수익(受益), 외조부는 소윤 순흥 안처효(安處孝)

 묘

장단군 낙화 창판원 마을에서 시흥시 상하리에 세 분을 합장했다. 비가 있다.

 

 

 

 

사위

趙仲輝(조중휘) 한양인 교리역임, 아버지 감사 근(瑾), 아들 사직 광유(光裕), 진사 광작(光綽), 광진(光震), 딸 참봉 나이동(羅異童)

宋胤鐘(송윤종) 진천인 문과 좌랑역임, 아버지 현감 宣(선), 아들 정자 평(平), 사위 첨지 구윤희, 첨지 고령 박세충

金孟剛(김맹강) 안산인 문과 교감, 아버지 찬성 개(漑), 아들 부정 위(瑋), 장고령 합(합), 전적 필(泌) 기묘명현, 딸 진사 이숭형, 수천부정 이윤인

魚孟濂(어맹렴) 함종인 감찰역임, 아버지 좌의정 함종군 세겸, 아들 찰방 숙정(叔貞), 사위 조복견, 이언박, 육창수(陸昌守) 이원례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화면의 오른쪽에는 덩굴풀이 흘러내리는 절벽이 있고, 절벽 아래에는 바위 위에 선비가 턱을 괴고 엎드려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화면의 왼쪽 중앙에 인재(仁齋)라는 강희안의 호 도장이 있어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나 여러모로 논란이 되고 있다.

강희안이 활동하던 조선 초기에는 안견을 비롯한 여러 화가들이 중국 북송대의 이곽파(李郭派) 화풍의 그림을 즐겨 그리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이와는 달리 조선 중기에 유행했던 절파 화풍의 구도를 여실히 보여주며, 엎드린 인물의 모습이 1679년에 만들어진 중국 화보 《개자원화전》에 나오는 〈고운공편심(高雲共片心)〉의 인물 모습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강희안은 중국에 사신으로 여러 차례 다녀왔기 때문에 《개자원화전》의 모본이 되었던 중국의 그림을 보았을 가능성도 있어서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화풍을 구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나 진위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분방한 붓질과 구도 등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사도교도(高士渡橋圖)

 강희안의 〈고사도교도〉는 조각난 그림이어서 전체적인 구도를 알 수는 없으나 여기에서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선비와 동자를 그리고 있다.
인물의 동작이나 물결, 다리 등 세부를 자연스럽게 묘사하여 강희안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위는 부벽준을 쓰고 있으며, 인물의 옷 주름선도 자연스럽다. 이 외에도 〈절매병도(折梅甁圖)〉, 〈개문도(開門圖)〉 등이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데, 모두 비슷한 화풍을 보여 이 그림과 같이 어떤 큰 그림에서 잘려진 작은 그림으로 생각된다

 

 독조도(獨釣圖)

나무밑 강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고 있는 인물을 묘사하였다. 시, 서, 화에 모두 뛰어난 문인화가 강희안의 작품이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사관수도>와 비교해서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다.

조선 15세기. 86/ 132Cm.

도쿄국립박물관

산수도(山水圖)

조선 15세기. 52.5/ 96.5Cm.

도쿄국립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