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사적명 |
박사공파조(휘 계용) 봉단 시제일-음력 10월 10일 |
사적명 |
봉양사(박사공, 내급사공, 어사공과 공목공 사당) 춘향제일-양 5월 5일 |
시조 |
以式(이식) 고구려 병마도원수 |
|
1世 啓庸(계용) 박사공파조 진주 강씨 대파조(大派祖) 문과(文科), 국자(國子) 박사(博士) 역임.1274년(고려
원종 15) 10월 원나라가 일본을 정복할려고 할
때 고려군 도독(都督) 김방경(金方慶)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아들 인문(引文)과
함께 일본 정벌에 참가하였다. 고려, 원나라(몽고) 연합군 2만 6천 병사가
10월 18일 대마도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이키시마(壹岐島)에서도 용전하여 크게 기세를 올렸지만, 10월
20일 하카다만에서 심한 풍랑으로 일본 정벌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
||
배위 |
미고 |
|
묘 |
실전하였으며 1994년 대동보 편찬후 손자 어사공(사첨) 봉단과 증손자 진원군(휘 창귀)의 묘가 있는 경남 합천군 율곡면 갑산리 마을 뒤 용덕산 임좌(壬坐)에 봉단과 비를세웠다. |
|
아들 |
緇涌絳帳 儼師道於靈宮 선비들 공부한 곳 공자의 사도 엄연하고 組帶靑衿 想成均於賢館 서적과 학생들은 현관의 성균관을 상상케 하고 平生一節 專對金烏之邦 평생 한가지 절의로 일본에 가셨으니 大名千秋 永欣朱雀之影 그 이름 천추까지 군기의 그림자에 길이 매놓으리 18세손 교관 석하(錫夏 1644∼1707) 가 지은 찬사 |
갑산재 |
대봉사 충의문 |
갑산재 용덕문 |
|
용어풀이 |
*국자 박사:국립대학 교수 *군(君):종친과 신하에게 주던 존호, 품계는 정1품에서 종2품까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