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孝胤(효윤) 통훈대부 영산현감

심+燧(수)◇○<박사공 14세/23-166>><판서공(휘 이행)…통계공파>

  1570∼1630 자는 유원(惟遠). 서울에 살았으며 부모님 사후인 1603년(선조 36) 계묘사마시(癸卯司馬試) 진사 3등에 입격, 1614년(광해 6) 개령현감, 익위(翊衛)로 재직 중 1616년(광해 8) 1월 병진증광(丙辰增廣)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2월 예조좌랑(禮曹佐郞)을 거쳐 8월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 11월 장령(掌令)을 역임하였다. 1618년(광해 10) 7월 사예(司藝), 9월 예빈시정(禮賓寺正), 1621년(광해 13) 3월 겸필선(兼弼善)을 지냈다. 11월 보덕(輔德), 인조가 등극하면서 매부 영의정 한효순(韓孝純)이 정죄되고 장령으로 재임 중 광해군이 대비를 폐할 때 청정에 참례한 일이 죄가 되어 투옥되고 1625년(인조 3) 폐모할 때 참정한 것은 만부득하다는 조정의 공론에 따라 다시 풀려나왔다.

 

배위

숙인 진주 柳氏(유씨) 3월 28일 별세, 아버지는 판관 立朝(입조), 조부는 天民(천민), 증조부는 군수 幹(간), 외조부는 훈정 전주 李敬元(이경원)

묘

충남 예산군 대흥면 금곡 자좌에 쌍분

 

아들

碩章(석장) 통덕랑, 생부 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