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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형-恰(흡)◇정민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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恪(각)<박사공 14세/23-197><판서공(휘 이행)…통계공(휘 회중)파> 1620(광해 12)년 11월 21일생∼1657년 4월 14일 별세, 자는 경오(敬吾). 호는 도은(陶隱).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인으로 병자호란 때 형 정민공 흡(恰)과 함께 양친을 모시고 경북 봉화 춘양면 법전(法田)에 기거하였다. 난리가 평정된 후에도 자정(自靖)하며 의를 지키고 효제를 다 하다가 38세에 조요(早夭)하였다. 1818년(순조 18) 12월 19일 이조(吏曹)에서 영남 유생의 상언(上言)으로 인하여 아뢰기를, “고 처사(處士)인 강각(姜恪)이 명(明) 나라를 높인 의리는 홍우정(洪宇定) 등과 다름이 없으니, 의당 함께 포장(褒奬)하는 조치가 있어야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라서 이조 참의를 추증하였다.<왕조실록 48권 14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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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 |
증숙부인 남양 洪氏(홍씨) 1624년 1월 9일생∼1659년 11월 3일 별세, 아버지는 참봉 욱(욱), 할아버지는 사직 思學(사학), 증조부는 정랑 仁壽(인수), 충정공 應(응)의 후손, 외조부는 문과 판결사 완산 李이慶(이이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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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
봉화군 상운면 운계리(남소야) 을좌에 합장, 소곡 참판 尹光紹(윤광소)가 갈명을 짓고 송하 판서 曺允亨(조윤형)이 전서와 글씨를 쓰고 영의정 李裕元(이유원)이 묘음기를 기록하고 참판 曺寅永(조인영)이 글씨를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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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
찬(찬) 수직 첨추, 우(우) 증 좌승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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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
任世翩(임세편) 풍천인, 아버지는 憲(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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