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漬(지) 가선대부 정평 행도호부사 영선군

 

世琛(세침)◇<박사공 11세/1-150><영선군(휘 이찬)…통계공파>

  1468∼1541, 자는 玉汝(옥여), 서울에 살았다. 1507년(중종 2) 식년(式年) 사마시 생원 3등에 입격하였다. 문음으로 1513년(중종 8) 예빈시 별제, 1524년 의금부 경력, 1526년 조지서 지사, 사헌부 감찰, 1527년 장례원 사평, 1529(중종 24) 1월 형조좌랑, 공주판관으로 오르고 여러 곳을 거쳐 1534년 사재감 주부, 평시서령, 이듬해 장례원 사의, 안악군수(安岳郡守)를 역임하고 1540년 사온서 주부, 군기시 첨정에 오르고 1541년 영천군수(榮川郡守)에 제수되었으나 이해 10월 3일 별세하였다.<왕조실록 17집 96면>  

 

 

배위

숙인 광주 李氏(이씨), 아버지는 집의 수언(粹彦), 조부는 찬성 한산부원군 호간공 손(蓀), 증조부는 감사 수철(守哲), 외조부는 군수 양주 조리(趙籬)

 

서울 강동구 고덕리 축좌(丑坐)에 쌍분, 석물이 있다. 묘지명은 숭정대부 예조판서 겸 지경연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김안국(金安國)이 지었다. 1994년 봄 묘역을 정화하였다.

아들

 질(질)◇집의, 무(무)  별좌,  굉(굉), 금(금) 증 이조참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