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呂翼(여익)  판삼사사

 형-元鑑(원감) 元纘(원찬)

 6세 元鐫(원전)  6元派 호부사공(戶部事公)파조

  자는 성진(聲振) 또는 계양(季陽)이며 호는 수성재(守惺齋), 불훤재 신현(申賢)의 문인으로 학문에 조예가 깊었고 행실이 독실하였다고 한다. 스승의 찬문(讚文)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校理)를 지내고 특명으로 전라어사(全羅御使)에 임명되어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공명정대하게 일을 잘 처리하였으므로 사민(士民)이 존경하고 많이 따랐다고 한다. 재관시에는 백성에게 보시(布施)하였다.

  거듭 징소(徵召)가 있었으나 사양하고 충청도 온양에서 현 군산시 회현면 대정리(구정)로 세거하시며 입항조가 되었다. 호부사(戶部事)에 증직되었다. 호부사공은 자손만대의 기지를 정할 때 재임중 답사한 비옥한 호남의 길지 가운데서 심사숙고 끝에 현재의 회현면 구정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공이 별세한지 600여 년이 되었으며 공의 묘소도 이곳에 있으며 공의 묘소 재각인 영모재도 이곳에 있다. 공의 후손들이 회현면(구정)을 중심으로, 많이 번성하였다.  

 배위

 안동 金氏, 참판 현(炫)의 따님이며,

 

묘

 군산시 회현면 학양리 학당산 대상 임좌에 쌍봉. 영모재는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에 있고 시제는 매년 음 10월 15일.

영모재(永慕齋)

  영모재는 호부사공의 증손인 증 병조판서(贈兵曹判書) 휘 응주(應周)께서 묘를 수호하며 제례를 극진히 하고 학문을 닦기에 의하여 수운정사(繡雲精舍)를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숙종 7년 신유(서기 1681년)에 중건한 이래 수차 보수를 하였고 1998년 대보수를  하였다. 수운정사는 1921년에 영모재라고 개액하였다. 영모재의 건물구조를 부면 정면에 영모재 서쪽에 화수각 동쪽에 전사재 그리고 정면에 대문과 익량이 있 다. 호부사공하 문중에서는 영모재를 은서당이라고 수 백 년간 부르고 있다.

아들

 自文(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