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곽잡록(西廓雜錄), 대동운해(大東韻海)에 관한 소고(小考)

 

 시조님(휘 以式) 사적(史蹟)에 관한 연구가 뜻 있는 여러 종친들에 의해 지금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시조님의 사적이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선생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 기록된 것 외에는 더 이상 새로운 사적이 밝혀지지 않은 채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쯤에서 서곽잡록(西廓雜錄)과 대동운해(大東韻海)의

  1. 책이름`

  2. 책의 성격

  3. 발간 시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저자의 이름은 실명(失名)됐으므로 이번 고찰에서는 제외하였으며, 감히 시조님 사적 문제를 상재(上梓)하여 경향 각지에 있는 석학들이 시조님 사적을 연구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1. 서곽잡록(西廓雜錄)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상권 54면 주석(註釋) <총론편 4. 사료의 수집과 선택에 대한 상확(어떤 일을 헤아려 정함)>에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다.

1) 古碑(고비) 참조에 대하여

  일찍 서곽잡록<西廓雜錄(저자 실명)>을 보다가

  "申砬聞先春嶺下有高句麗舊碑 潛遣人渡豆滿江 摸本以來 所可辨識者

   不過三百餘字 其曰皇帝 高句麗王自稱也 其曰相加 高句麗大臣之稱也"

  "신립(申砬)이 선춘령 밑에 고구려 옛 비가 있다는 것을 듣고 몰래 사람을 두만강 건너에 보내어 탁본해 왔다. 그중 식별할 수 있는 것이 불과 300여 자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에 황제라 함은 고구려왕이 스스로 칭함이오 상가(相加)라 함은 고구려 대신을 칭함이다"

라는 일절을 단재(丹齋)가 발견하고, 만주 깊은 산중에 천고(千古)의 빠진 고사(故事)를 보완할 비가 어찌 이것 하나 이뿐이랴."하며 크게 기뻐하였다.   

 그런데 위와 같은 내용이 단재의 <조선상고문화사>(제1편 제2장 조선 역대 문헌의 화액(禍厄)에서도 보이는데 거기에서는 <해상잡록(海上雜錄)>에서 인용하였다고 하였다.  서곽잡록과 해상잡록이 신립장군에 대한 사적의 내용은 비슷하나 다만 해상잡록에서 호종단(胡宗旦)이란 자가 이 비를 부수어 오직 10여자 밖에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단재는 비슷한 내용을 서곽잡록과 해상잡록의 두 곳에서 발견한 셈인데 같은 책을 혼동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고 이만열(李萬烈) 교수가 주석에서 밝혔다.  그러나 고구려 구비의 비문 내용을 서곽잡록에서는 3백여 자를 해상잡록에서는 호종단이 비를 부순 까닭에 판독이 10여 자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으므로 같은 책으로 볼 수 없다.  호종단은 중국 송나라 복주 사람으로 1163년 고려 예종 때 상선을 타고 와서 공작 등 진귀한 보물을 바치고 고려에 귀화하여 왕의 신임을 받고 인종 때는 종5품 기거사인(起居舍人)이란 벼슬을 한 사람이다.

  호종단이 비를 부순 까닭도 알 수 없지만, 비를 부순 시기가 고려에 귀화하기 전인지 귀화 후인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그 당시는 10여 자밖에 판독이 되지 않았는데 4백여 년 후에 3백여 자가 판독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겠으나 후세 사람들의 정교한 판독 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 지도 모다.

   (1) 책이름과 내용

  00잡록 이란 책들이 대개 역사, 지리에 관한 내용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오늘날의 백과사전이다.  서곽(西廓)이란 말은 지명과 저자의 아호로 볼 수 있다. 지명일 때는 서쪽의 성곽(도읍의 주변을 둘러 싼 누벽)을 뜻하므로 서경이라 풀이할 수 있고 고구려의 도읍(평양)을 뜻하여 고구려에 관한 지리, 역사서일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의 아호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2) 발간 시기

  신립 장군이 등장한 연대가 1546∼1592년이므로 임진란 이후가 된다.  서곽잡록의 신립장군에 관한 내용과 1583년 회령지방에서 여진족 니탕개가 일으킨 반란으로 경원부사 김수(金璲)가 패전하자 온성부사 신립이 두만강을 건너 적 소굴을 소탕한 후 함경북병사로 승진하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3) 비슷한 책 이름에 관하여

  조선상고사 주석란에 혹시 단재가 서곽잡록과 해상잡록을 혼동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하는 대목은 앞서에서 이미 논한 바 있지만. 해상잡록은 조선도서해제(朝鮮圖書解題)에 보면 조선단기(朝鮮檀箕) 이래의 역사의 사력(事歷)을 여러 책에서 채록한 것으로 기자 조선이래 고려말까지의 왕실 사적과 성을 나누어 열전(列傳) 형식으로 조선 초기까지의 인물을 기술하여 17권 7책으로 엮어졌으며 조선시대 권별(權鼈)이 편저한 책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권별과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권문해(權文海)가 다 같은 예천 권씨라는 점이다. 대대로 역사서를 편찬하여 이 방면에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집안이므로 사실(史實) 자체의 신빙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 대해서는 다음 대동운해(大東韻海)에서 논하기로 한다.

   2. 대동운해(大東韻海)

 (1) 책 이름과 내용에 대하여

  「대동(大東)」은 우리 나라를 일컫는 말다. 「운해(韻海)」라 함은 역사의 사실을 운의 차례로 배열하여 광범위하게 기술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2) 발간시기

  「대동(大東)」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우리나의 별칭이다. 그러므로 발간시기는 조선시대이다.

  (3) 비슷한 책 이름에 관하여

  권문해(1534∼1591)가 지은 대동운부군옥은 수 천 가지의 서적을 참고하여 단군이래 조선 선조(宣祖)까지 모든 사실을 인물, 지리, 문학, 예술 등을 총망라한 것으로 이 책 역시 운자(韻字)에 의하여 저술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며 20권으로 되어 있다. 초간 목판본은 경북 예천군 금곡리 예천 권씨 종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1957년 정양사에서 영인, 색인을 붙여 발행한 바 있다.

  이상에서 논한 해상잡록과 대동운부군옥(일명 대동운옥) 두 권의 책을 구하여 이 방면에 조예가 깊으신 일가분들께서 이 책을 연구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특히 권문해가 지은 대동운부군옥은 수 권의 책에서 사실을 참고하여 만든 책이기 때문에 시조님의 사적을 찾을 가능성이 많다. 더구나 이 책은 1957년도에 영인본으로 만들어진 사실이 있으므로 이 책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데에 더욱 희망적이다. <1998년 장충동에서 大熙 謹識>

 

패림(稗林)에 실려 있는 서곽잡록(西廓雜錄)

패림(稗林)에는 96종의 야사가 실려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서곽잡록(西郭雜錄)은 조선시대 철종 때 쓰여진 조선 야사 총서인 패림(稗林)(개성의 모씨가 소장한 원본을 복사한 것을 조윤제박사가 소장하고 있다가 1969년 탐구당에서 영인하여 만든 299권 10책으로 아주 희귀한 야사 96종이 수록되어 있다) 제 8집에 실려 있는 승지 이문흥(李文興) 저서인데 내용은 임란 때 이야기를 적고 있을 뿐 시조님의 사적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상고사에 등장하는 서곽잡록과 패림에 실려 있는 서곽잡록은 같은 책이냐, 아니면 다른 책이냐는 지금으로서는 규명할 수가 없다. 다만 두 책이 발행 연도가 엇비슷하고, 다같이 임진란 때 일들을 기록한 점, 흔치 않은 책 이름이 같다는 사실은 아직은 이문흥의 서곽잡록이 이본(異本)이라고 속단 하기에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