桓檀古記(한단고기)와 姜氏 ○퍼온 글

 

'한단고기(桓檀古記)와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
그동안 중국 고서에만 의존했던 염제 신농씨의 기록을 우리 시각에서 보는 계기를 마련

  특히 한단고기 중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신시본기(神市本紀),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에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 이야기가 나온다.
 
태백일사(太白逸史)는 궁중의 비장서를 참조하여 쓴 책

  태백일사가 어떻게 전수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 치하에서 오적신(五賊臣)을 권총으로 사살할려고 결행하였으나 실패하여 진도(珍島)에 유배되었던 해학(海鶴) 李沂(이기) 선생의 소장서이다.
  태백일사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 李陌(이맥 호는 일십당 1498년 문과에 등과)이 지은 것으로 그는 단군세기를 지은 李암(이암)의 현손으로 성품이 강직하여 연산조에서 직간(直諫)을 하다가 미움을 받고 귀양갔다. 유배지에서 많은 책을 읽었다. 중종 때 다시 조정에 들어와 1520년 수찬관(修撰官)으로 재직하면서 궁중의 많은 비장서(秘藏書)를 접할 수 있었다. 이때 태백일사(해동인물지에는 太白遺史라 되어 있음)를 지었다. 그러나 감히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비장해 오던 책이다.<태백일사 고구려본기편 28대 영양무원호태열제 편에 '임유관 전쟁'이라고는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영양왕은 곧장 장수(將帥)와 병사를 보내 적의 괴수를 사로잡아 죽이니 산동지방은 이에 다시 평정되고 조용해졌다. 이 해에 양견(수문제)은 또 양량 등 30만 병력을 파견하여 고구려를 치려고 했으나 고구려가 이를 미리 알아차리고 나아가 이를 방어할 때 돌연 (바다에) 대풍이 불어 (수나라 전함) 전군이 표류하며 침몰하였다.>
 
태백일사(太白逸史)는 震域遺記(진역유기)를 참고

  태백일사가는 북애(北崖)의 揆園史話(규원사화)와 함께 고려 공민왕 때의 학자 李茗(이명 호는 청평)이 쓴 震域遺記(진역유기)가 이 책들의 모본(母本)이다 震域(진역)은 우리나라를 뜻한다.  
 
조선(朝鮮)의 영역

  사마천의 <史記> 115권 조선열전편에
  朝鮮有潮水洌水汕水三水合爲洌水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조선에는 조수, 열수, 산수라는 3개의 물이 합쳐져 낙랑부근의 열수가 되어 이로 인하여 조선이란 이름을 취했다)
  실제로 중국의 하북성에는 潮水(조수)도 있고 汕水(산수)도 있다. 그러므로 조선은 한반도와 만주 일부 지방에만 국한된 지역이 아니라 중국 하북성(河北省)까지 영역을 넓게 잡고 있었다.
 
 
염제 신농씨의 연대

  한단고기 40페이지에 있는 董作賓(동작빈)의 年表(연표)에는 염제신농씨가 BC 3218∼BC 3078년 까지 존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단군세기에 보면 단군조선에 앞서 神市朝鮮(신시조선 1565년간), 桓國朝鮮(한국조선 3301년간)이 존재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염제 신농씨의 年表(연표)가 신시, 한국 조선 포함된다.
 
염제신농씨의 출생지

  염제 신농씨가 태어난 곳은 列山(열산 史記의 기록과 일치)이며 열산은 列水(열수)가 흘러 나오는 곳이다. 이곳은 고조선의 영역에 포함된다.
 
염제 신농씨의 아버지 少典(소전)

  염제 신농씨는 少典(소전)의 아들이며 소전은 熊氏(웅씨)에서 갈라져 나간 후예이며 高矢(고시)의 방계이다. 少典(소전)은 안부련(安夫連) 말기에 姜水(강수)에서 병사들을 감독했다.
 
염제 신농씨의 성(姓)

  <사기(史記)>에 염제 신농씨의 성씨는 姜, 이름은 石年(석년)이라 했다.
 
염제 신농씨는 배달 겨레

 태백일사(太白逸史),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에 소전의 한웅 아들 신농(神農)은 수많은 약초를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뒤에 열산으로 이사하여 낮에는 교역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편리하게 살게 하였다.<임승국 번역 주해 정신문화사 간 1986 한단고기<196∼6면>
  환단고기에서 보듯 염제 신농씨는 배달 겨레이다.
 
기타문헌

  맹자 5권 등문공장구상(藤文公章句上)에 許行(허행)이라는 사람이 맹자에게 염제 신농씨는 농사 짓는 법을 백성에게 가르치고 직접 백성과 함께 농사 짓는 것에 대하여 맹자의 견해를 묻는 글이 나온다. 염제 신농씨는 햇곡식으로 천신제를 지내는 법을 제정하는 등 인류 문화 개척에 큰 업적을 남기고 산동성에 있는 고부에서 생애를 마쳤다.
 
치우(蚩尤) 천왕(天王)도 姜씨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신시본기(神市本紀)에 옛날 呂尙(여상 강태공)도 역시 치우의 후손이며 강씨이며. 치우는 姜水(강수)에서 살았다.
  참고로 염제 신농씨 외에 三聖紀(삼성기), 단군세기, 태백일사에 蚩尤天王(치우천왕)이 여러 곳에 등장하는데 이분 역시 姜氏 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 고서에도 등장하는 걸 보면 한국, 중국을 포함한 동방의 軍神(군신)이었다. 왕호를 慈烏支天王(자오지천왕) 桓雄(한웅)으로 불려지며 주석과 쇠를 캐내어 무기를 만들고 돌을 날려 목표물을 맞추는 기계를 만들고 스스로 머리와 이마에 구리와 쇠로 무장하여 천하가 이를 두려워하며 크게 떠받들었다.
  <한서(漢書)> 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왕의 능은 산동성의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 가운데 있는데 그 높이가 7자이다. 우리 나라에도 여러 곳에 치우사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