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명

박사공 9세손 집의공(휘 숙경) 산소

사적명

 

소재지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

소재지

교통편

교통편

기타

시향일-음역 10월 16일

기타

아버지

友德(우덕) 창녕현사, 증영의정

형-孟卿(맹경)○영의정

叔卿(숙경)<박사공 9세/1-71><통정공의 손자> 嶺南樓(영남루)를 중수

  1428∼1481 자는 경장(景章), 호는 수헌(守軒). 1453년(단종 1) 8월 경희전직, 1457년(세조 3) 3월 도관주부(都官主簿)로 충청도의 구황(救荒)을 살폈고 제언(提堰) 경차관(敬差官)을 역임. 주부(主簿) 동년 8월 원종 3등공신(原從三等功臣)의 녹훈을 받았고, 사헌부 감찰, 강원도사, 좌랑, 종부시판관, 종친부전첨, 사재부정(司宰副正)으로 옮겼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1461년(세조 7) 4월 밀양부사로 나아갔다. 다시 군기감 정(正) 겸 사헌부 집의가 되고 1473년(성종 4) 7월 함안군수(咸安郡守)로 나아가 재직 중 치적을 쌓아 상을 받았다. 어머니 상복을 벗을 때 중추원 경력으로 불렀으나 사양했다. 1518년(중종 13) 정산향현사(鼎山鄕賢祠)를 세웠고 손자 혼(渾)의 공적으로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형 영의정 맹경(孟卿)이 동생(숙경)이 嶺南樓(영남루)를 중수한 것을 보고 기(記)를 지어주기로 하였으나 병으로 초고만 완성하고 짓지 못하였다. 형의 친구인 영의정 신숙주에게 부탁하여 嶺南樓記(영남루기)를 짓게 하였다.<왕조실록 6집 610면, 7집 245, 460면>

 

배위

증 정부인 광산 金氏(김씨) 1471년 별세, 아버지는 현감 철성(哲城), 증조할아버지는 삼중대광 정(鼎)이다.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 반야동 건좌(乾坐)에 쌍분, 정강서원(鼎岡書院)에 배향되고, 직제학 유의손(柳義孫)이 묘갈명을 지었다. 반야동 입구에 있는 신도비명은 의성 김황(金榥)이 짓고 15대손 제헌국회의원 달수(達秀)가 글을 썼다.

아들

仁範(인범) 부사과, 증좌찬성, 義範(의범) 감역, 禮範(예범) 생원, 信範(신범)

 

사위

河龜年(하구년) 진주인, 대경(大卿). 아버지는 좌랑 주(澍), 아들은 박(璞) 부사, 정(珽) 부사, 구(球) 내금장, 사위 광주 노섭(盧攝), 강정숙(姜正叔)

許錘(허추) 김해인, 참봉. 아버지는 부위 문손(文孫), 아들은 현감 공작(公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