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璜寶(황보)

 동생-孫壽(손수)

   孫奇(손기) <박 6세>

  1364∼1422 자는 일지(一之) 호는 여은(旅隱).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문하생.공양왕 때 산원령동정(散員令同正)을 역임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미숭산(彌崇山 지금의 美崇山)에서 10여 년간 두문불출하였다. 1452년(문종 2) 아들 열(烈)의 공적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 판의금부사 겸 오위도총부 총제에 증직되었다. 정종, 태종 양 대에서 수차에 걸쳐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고 산에 은거하며 절의(節義)가 담겨있는 수양사(首陽詞)를 지었다. 이 사실이 군지(郡誌)에 실려 있다. 개경(開慶)에 살았다. 문림리(文林里)로 옮겨 살았다. 

배위

 증 정경부인 고성 李氏 소감(少監) 을현(乙賢)의 따님이며 1370년에 태어나 1483년까지 살았다. 할아버지는 우군 총제 백(伯), 증조할아버지는 판중군 윤주(允柱), 외할아버지는 참군 밀양 변치온(卞致溫)이다. 묘는 합장했다  

 

 경남 의령군 부림면 단원리 대등산 유좌(酉坐)에 있다. 행장은 사인 최산두(崔山斗)가 지었다.증손녀 사위 이조정랑 이희민(李希閔)이 비문을 지었다. 단원리에 단원재(丹原齋)가 있다.  

아들

 烈(열)

사위

魚繼孫(어계손) 함종인(咸從人). 판윤을 역임했다.

裵찬(배찬) 분성인(盆城人). 군수를 역임했다. 아버지는 진사 연비(延斐), 아들은 상금(尙錦) 생원, 경(尙絅) 생원

朴致本(박치본) 밀양인(密陽人). 감찰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