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忠遠(충원)

동생-강길태(현 순천 청암대 학장),
     강길만(9대 국회의원)

 27세 桂重(계중)<박사공 27세/통정공파>

 봉산사 재건, 종사 발전에 큰 발자취 남겨

  1914~1983 보명은 聲昊(성호), 호는 호산(湖山)

  선생은 70 평생을 항일 독립 투쟁과 60만 재일 거류민 사회의 지도자로서 교포 권익 보호에 앞장 섰으며, 북한 조총련과의 반공 투쟁을 한 애국자이다. 조국에 돌아와 8년 동안 시조님 사당인 봉산사 재건에 심혈을 쏟았으며 고향 전남 지역 사회 개발, 농어촌 지도자 양성, 장학사업, 제주 감귤 재배에 끼친 공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공적으로 1974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1976년11월 18일 봉산사 재건 기공식을 시작으로 준공을 불과 몇 달을 눈 앞에 두고 1983년 8월 25일 타계할 때까지 선생의 필생의 사업으로 시조님 강이식 고구려병마 도원수 사당인 봉산사 재건에 투지를 붙태웠다. 봉산사 재건으로 강문의 정신적 도량이 진주 비봉산 자락에 자리잡고 동방 대성의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선생은 숙환으로 타계하기까지 70 평생을 오직 조국과 선조님 위선 사업에 전념하였다.

  1914년 승주군 황전면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철물점 점원등 여러가지 생활을 하다가 1943년 징용으로 일본 홋까이도로 가게 되었으나 징용 노역자에 대한 학대에 분격하여 탈출하였다. 해방 후 일본에 머물며 노무자와 불우한 동포 여성 해방과 귀국 주선에 힘썼으며 조선인 연맹지부를 결성, 재일 대한청년단 지도자 역할 등 청년지도 사업과 조선인 권익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1959년에는 오오사까에서 북송반대 재일동포 충궐기대회,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한 적극적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63년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 오오사까 지방본부 단장에 선임되어 1968년까지 4선을 연임하며 거류민단 단결에 핵심적 역할을 하여 60만 재일 한국인의 법적지위 향상과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타결에 적극 지원하였다. 아울러 1965년 순천,승주에서 선발된 문태석, 정훈씨 등 16명의 2차 농업연수생의 교육과 유학을 주선해 선진농업기술을 일본에서 익히게 한 결과 이들은 순천.승주 지역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일선 농업기술자로 농업 근대화의 기수 역할을 했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두 아우 강길태(현 순천 청암대 학장),강길만(67.9대 국회의원)씨와 함께 자수성가한  선생은 1960년대초부터 본격적인 고향과 모국을 위한 사업에 나섰다.
  고향 황전, 월등 2개 면의 8천가구에 전기를 가설해 주고 전남도에 농약 살포용과 대간첩 경비용의 헬리콥터(2대)를 기증하였으며, 내무부 치안국, 기동경찰대, 순천경찰서 등에도 오토바이를 기증하였다. 광일 장학회를 세워, 승주. 순천 각급 학교, 기관, 양로원.경로당 지원등 수 십 여건에 이르는 거액의 각종 지원사업을 하였다. 
  1971년에는 고향을 지원하기 위한 오오사까 전남 출신 동포들과 재일본 전남도민회를 결성해 상호협조는 물론 각종 사업을 통해 고향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도록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파란만장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도 자수성가, '德'을 베풀며 살아온 선생은 의병대장 강진원(姜振遠) 장군의 후예답게 자신을 돌보기 보다는 겨레와 나라를 위한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제주 감귤 재배의 숨은 공로자

  황폐하고 낙후되었던 섬, 제주도가 오늘날과 같은 놀라운 발전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감귤재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라산의 기적' 이라 불리는 제주감귤 재배의 길을 처음 연 공로자가 바로 이 지역 출신 재일교포 고(故) 강계중씨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재일본 거류민단 오오사카 본부단장을 지낸 강계중씨는 60년대 한·일국교정상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재일한국인들의 법적지위 향상과 거류민단 단결, 헤아릴 수 없는 국내지원 사업등 다각의 활동으로 민족최고의 영광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에 빛나는 공적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조국의 농업발전에도 남다른 열의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강단장은 1966년 7월 당시 낙후된 우리 농촌에 신영농 기술을 보급하고자 전국에서 선발된 59명의 농업기술 연수생을 일본에 초청하여 6개월간 농업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때 연수생 중 제주도 출신인 3명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에 일본의 유명한 감귤산지인 지역과 기후적인 특성이 제주도와 유사함을 알고 이곳에서 강단장의 배려로 6개월간 감귤재배 기술을 습득케 했다.
 3명의 연수생들은 귀국시 강단장으로 부터 100여 그루를 선물받아 제주도에서 재배에 성공했다. 
제주도로부터 감귤재배에 관한 지원을 요청받은 강단장의 선구적 노력과 오오사카 거주 제주출신 단체로부터 보내진 60만 그루의 감귤묘목이 오늘날 한라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오늘날 제주도에서는 감귤재배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한 강단장의 업적을 지금도 잊지 않고 기리고 있다.


  
조국과 향토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선생의 동상이 순천 조곡동 죽도봉 공원에 세워졌다.
 이 동상은 시민과 유족들이 모은 성금 2억9백만원을 들여 청동으로 제작한 5.7m(동상 3m, 좌대 2.7m) 높이의 입상이다.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중리 계좌

 

아들

漢求(한구), 賢求(현구)

 

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