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渭興(위흥) ◇

형-翌

학(학)◇○<박사공 14세/23-231><판서공(휘 이행)…통계공파>

  1601∼? 1월 25일 순절, 자는 군백(君白), 용균(用鈞). 호는 완암(浣岩), 서울에 살았으며 어머니 생전인 1624년(인조 2)증광 사마시 진사 2등에 입격하여 1627년(인조 5) 2월 영숭전참봉(永崇殿參奉)이 되고 동년 8월 정묘정시문과(丁卯庭試文科) 을과(乙科)에 급제, 이때 시권중(試卷中) 용균(用鈞)자가 선왕이 잠저시 휘자(諱字)였다고 해서 용균(用鈞)을 사용치 않았다. 1632년(인조 10) 5월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이듬해 7월 경성판관(鏡城判官), 영원군수(寧遠郡守), 1637년(인조 15) 병조정랑(兵曹正郞)으로 말 1필을 하사받았다. 1675년(숙종 1) 영원군수(寧遠郡守)로써 상경하여 중시(重試)를 볼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강화도에 들어가 항전하다가 순절하여 나라에서 포상을 내리고 도승지에 증직(贈職)하고 정려를 내렸다.<왕조실록 34집 175면∼35집 15면>

배위

증숙부인 청주 韓氏(한씨), 아버지는 감찰 師一(사일), 청원위 景祿(경록)의 증손

 

 묘

인천시 강화군 장령동 쌍령 영양동에 쌍분

 

아들

五一(오일)

사위

睦林馨(목림형) 사천인 목사, 아버지는 판사 嗜善(기선), 아들은 군수 天麟(천린), 天胤(천윤), 감역 天龜(천귀)

李彦륵(이언륵) 전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