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命瑞(명서) 통덕랑

 

 弘胤(홍윤)<박사공 13세/1-183><판서공(위 이행)…통계공파>

   1571년 12월 28일생∼1640년 2월 18일 별세, 자는 대승(大承) 호는 성재(惺齋). 서울 장의동에서 출생, 율곡 이이(李珥), 우계 성혼(成渾)의 문인. 전후 친상에 모두 시묘살이를 하였고 광해군의 수모(讐母) 당시 유소(儒疏)에 불참했다. 인조 때에 학행으로 제용감 참봉, 효릉 참봉을 제수하였으나 불취. 병자호란 때 거의(擧義)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아들과 같이 정축년 봄 고창(高敞)으로 남하하여 은둔 4년만에 타계, 사적이 모양지(牟陽誌) 행의편에 실려있다. 족손 충목공 유(瑜)가 행장, 송사 기우만(奇宇萬)이 묘갈, 10대손 호영(浩永)이 추기를 지었다. 재각 영사재(永思齋)가 있다. 저서로는 파산기문(坡山記聞), 계상강설 (溪上講說) 및 시문(詩文)이 있다.

배위

공인 전주 李氏(이씨) 1572∼1637년 12월 17일 별세, 아버지는 별제 文良(문량)

 

묘

고창군 아산면 목동리 당산 해좌에 합장했다. (시제는 음력 10월 1일)

 

아들

恂(순) 호 청계일인

 

사위

黃宗燁(황종엽) 평해인

金南雄(김남웅) 광산인, 무과 통정대부, 아들은 경형(慶亨), 履猷(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