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참봉 몽린(夢麟)

형-돈(燉), 동생-병(炳)

  (희)<박 12세>   <여은공(휘 손기)파>

   1542년~1593년 자는 덕장(德章), 호는 이재(頤齋). 남명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임진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다음해 율진에서 순절(殉節)했다. 충익공 곽재우가 눈물을 흘리면서 형님께서 한 번 죽는다는 마음이 가슴 속에 있었을 지언정 이러한 때에 헛되게 죽었으니 무익하며 어찌 적을 그렇게 가볍게 보았단 말인가 하고 탄식했다. 보좌관 심대승에게 의령군 정곡리로 마장 건좌 언덕에 예장하게 하였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이조정랑, 다시 이조참의(吏曺參議)에 추증되었다. 아들 경승이 가전을 지었고, 진사 이석기(李石紀)가 행장을 지었다. 이 사실이 읍지에 실려 있다.

 배위

증 숙인 청송 沈氏(1544년 10월 2일∼1594년 11월 11일 별세). 아버지는 현감 혼(渾), 조부는 효자 안린(安麟), 증조부는 부위 종원(宗元), 외조부는 충의공 김해 허만석(許萬錫).

 

 

유곡면 당동 자암정 유좌(酉坐)에 합장했다.

 아들

慶昇(경승), 吉昇(길승), 顯昇(현승), 敏昇(민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