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
仁範(인범) 정략장군 |
매부-河護, 魚得江 |
|
渾(혼)◇◇○<박사공 11세/1-71><통정공파> 대제학 역임 1464∼1519 자는 사호(士浩), 호는 목계자(木溪子),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탁영 김일손(金馹孫)과 종유했으며, 1483년(성종 14) 진사, 생원시(生員試)에 장원하고, 1486년 민이(閔이) 방 식년문과(式年文科) 병과(丙科) 급제, 1489년(성종 20) 주서(注書), 홍문관 교리, 이조정랑, 1492년 검토관, 12월 사가독서(賜家讀書)하고 문명을 떨쳤다. 1498년 (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장류(杖流), 얼마 뒤 방환(放還)되었다. 1500년(연산 6) 1월 홍무관 부교리, 4월 교리, 1503년(연산 9) 지평, 직제학을 지내고 1504년(연산 10) 9월 좌부승지, 이듬해 우부승지, 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으로 진천군(晉川君)에 봉해지고, 1507년(중종 2) 1월 대제학(大提學), 4월 공조판서, 형조판서 상의원제조 1508년 1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어 원접사(遠接使)가 되었으나 모친의 위급한 병으로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을 봉양하기를 청하였으나 부모의 나이가 70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0월 겸지춘추부사, 한성부 판윤, 11월 경상도관찰사, 1510년 1월 공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4월 형조판서, 1511년(중종 6) 4월 진천군에 10월 공조판서, 이듬해 2월 다시 진주 부모님 봉양을 원했으나 허락치 않고 대신 가까운 도(道)인 경상 감사가 되었다. 7월 한성부판윤, 1514년 1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2월 겸도총부 도총관, 6월 형조판서, 1515년 4월 경기도관찰사, 이듬해 9월 호조판서, 1517년(중종 12) 6월 공조판서, 1519년 3월 고향으로 돌아가 안종(眼腫)으로 병석에 누웠다가 5월 15일 별세하였다. 대광보국 승록대부 판중추부사 이조판서 전문형 의정부 좌찬성 청천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간(文簡).<왕조실록 7집 675면∼20집 533면> |
||
|
배위 |
정경부인 양천 崔氏(최씨), 아버지는 증 예조참판 웅(雄), 할아버지는 사정 포(浦), 증조할아버지는 서령 안청(安淸)이다 묘는 같은 곳 해좌(亥坐)이다. |
|
|
정경부인 朴氏(박씨), 묘는 쌍분이다. |
||
|
묘 |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 반야동 선영 청룡 해좌(亥坐)에 있다. 정재 유치명(柳致明)이 지은 신도비가 있었으나 병란으로 유실되고 경연(經筵) 곽면우(郭면宇)가 지은 비명이 있다. |
|
|
아들 |
壽弘(수홍) 참봉, 증 예조참판, 壽澈(수철) 어모장군 |
|
|
사위 |
安仁壽(안인수) 탐진인 權慤(권각) 안동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