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洧(유) 창선대부 충무위 부사직

 

世胤(세윤)◇○<박사공 11세/1-212><판관공(휘 이공)…통계공파>

  1521∼? 자는 선술(善述). 서울에 살았으며 아버지 생전인 1552년(명종 7) 식년 생원(生員) 3등에 입격하여 1559년(명종 14) 기미정시문과(己未庭試文科) 유영길(柳永吉) 방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그후 지제교(知製敎)를 거쳐 봉훈랑(奉訓郞) 수사헌부지평(守司憲府持平)을 거쳐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 통례원우통례(通禮院右通禮)를 역임하고 시정(寺正), 안변부사(安邊府使)를 지냈다.  

배위

숙부인 월성 李氏(이씨), 아버지는 찰방 흥(興)이며 묘는 실전하여 1987년 3월 후손들이 단을 세웠다.

 

묘

경기도 고양시 오금동 선영 오금동 선영 아래에 있었으나 실전하였다.

아들

應聖(응성)○지평, 應祺(응기)

사위

崔光遠(최광원) 수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