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징(징)○예조참판, 수지중추부사

동생-儀(의) 판관, 億(억)○정언, 儼(엄) 교감, 偉(위)○목사, 俊(준) 참봉, 任(임) 진사

僖(희)<박사공 11세/1-179><판서공(휘 이행)…통계공파>

  1492∼1539년 5월 21일(향년 48) 자는 중열(仲悅). 음(蔭)으로 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 그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신창현감(新昌縣監)을 역임했다.

  부인 나주 김씨(羅州金氏)가 삼상(三喪) 후 순렬(殉烈)하니 1543년(명종 38) 9월 28일  의정부가 아뢰기를,

  “효우(孝友)가 가상한 전 목사(牧使) 송희규(宋希奎), 연안(延安)에 사는 효녀(孝女)인 기관(記官) 최귀형(崔貴亨)의 딸 금이(今伊), 평산(平山)에 사는 절부(節婦)인 신수운(申守雲)의 아내 보동(甫仝), 은률(殷栗)에 사는 효자 김영해(金盈海), 서울에 사는 절부 전 현감(縣監) 강희(姜僖)의 아내 김씨(金氏)를 정문(旌門)하고 복호(復戶)하소서. 개성부(開城府)에 사는 효행(孝行)이 뛰어난 모장(毛匠) 김만석(金萬碩), 강릉(江陵)에 사는 절부인 진사(進士) 장진문(張振文)의 아내 김씨와 효자인 사정(司正) 이정필(李貞弼)과 유학(幼學) 박억추(朴億秋), 원추(原州)에 사는 효자 충순위(忠順衛) 안팽년(安彭年), 춘천(春川)에 사는 절부인 양녀(良女) 억금(億今)과 팔월(八月)은 상물(賞物)을 주고 복호하소서. 강릉에 사는 효자인 첨정(僉正) 전공간(全公侃)과 생원(生員) 박공달(朴公達), 평해(平海)에 사는 절부인 정칭(鄭?)의 첩 자문구(子文球) 등은 복호하여 포장(褒奬)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윤허하였다. <왕조실록 19집 15면>

 

 

 

배위

숙인 나주 金氏(김씨)이며 1544년(중종 39) 2월 5일 별세하였다. 아버지는 사복시정 증 판서 봉서(鳳瑞), 조부는 증참의 경근(敬近), 증조부는 판관 양(壤),  외조부는 첨지 안동 김거(金거)의 외손녀이다. 1539년(중종 34) 남편의 예장을 치르고 유언을 따라 판관공 의(儀)의 아들 응서(應瑞)를 후사를 삼았다.

 

 묘

아버지 묘 아래 임좌(壬坐)에 있으며 석물이 있다. 주세붕(周世鵬)이 지은 묘갈명이 있었으나 부러져 좌측에 묻었다.

아들

應瑞(응서) 과위교위, 증 좌승지, 생부 儀(의)